시련을 이겨낸 전설적인 투자자 : 찰리 멍거의 인생과 투자 철학
안녕하세요! WStorybook의 마이클입니다.
“훌륭한 기업을 적정 가격에 사라” , 워렌 버핏의 파트너이자 조언자
오늘은 투자계의 전설, 찰리 멍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에서 찰리 멍거의 질의응답 세션을 들어보면, 단순하지만 깊이 있고 재치 있는 답변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사실 찰리 멍거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상당한 내공과 깊이가 있었던 것 아닐가요?
찰리 멍거의 인생 스토리 시작하겠습니다.

✅ 오마하의 소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다
1924년 1월 1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찰리 멍거는 변호사 부모님 밑에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이로 자랐습니다.
찰리의 고향은 그 유명한 워렌 버핏과 같은 오마하 입니다.
참고로 10대 시절, 그는 워렌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료품점 ‘버핏 앤 선’에서 일했지만, 당시에는 정작 버핏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미시간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다 1943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19세의 나이에 대학을 중퇴하고 미 육군 항공대에 입대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멍거는 학사 학위도 없이 하버드 로스쿨에 지원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당했지만, 가족의 친구이자 하버드 로스쿨 전 학장이었던 로스코 파운드의 도움으로 운좋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 찰리 멍거, 시련을 딛고 일어서다
멍거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53년, 29세의 나이에 8년간의 결혼 생활이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멍거는 이혼 과정에서 집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산을 아내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더 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8세 아들 테디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1950년대에 이 병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의료보험도 없었기에 멍거는 막대한 치료비를 모두 직접 부담해야 했습니다. 결국 1955년, 테디는 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1세의 찰리 멍거는 이혼, 파산, 그리고 어린 아들의 죽음이라는 세 가지 비극을 동시에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투, 분노, 복수심, 자기연민은 재앙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인생의 모든 불행은 명예롭게 행동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 변호사에서 투자자로, 그리고 버핏과의 운명적 만남
멍거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1949년 로펌 ‘라이트 앤 개렛’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자신의 로펌 ‘멍거, 톨레스 앤 올슨’을 설립했습니다.
이 로펌은 오늘날 미국 서부에서 가장 권위 있는 로펌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다 1959년, 고향 오마하에서 열린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의 인생을 바꿀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됩니다.
공통의 친구 소개로 워렌 버핏을 만난 것입니다.
버핏은 찰리를 만난 지 단 몇 분 만에 이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영원히 함께할 파트너임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버핏의 권유로 멍거는 1965년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투자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1962년부터 1975년까지 운영한 그의 투자 파트너십은 연평균 19.8%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 지수의 수익률이 5%였음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성과였죠.
1978년, 멍거는 공식적으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 버크셔 해서웨이의 설계자
멍거는 버핏의 투자 철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원래 버핏은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의 철학을 따라 ‘문제가 있는 회사를 헐값에 사는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멍거는 버핏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적당한 회사를 헐값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회사를 적정한 가격에 사는 것이 훨씬 낫다.”
이 철학적 전환은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같은 역사적인 투자로 이어졌고, 이 회사들은 버크셔 포트폴리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참고: 1988년 주주 서한 (Berkshire Hathaway 1988 Letter _ 코카콜라 투자)

6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버핏과 멍거는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습니다.
버핏은 2019년 인터뷰에서 “나는 찰리와 함께 있을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배운다”며 그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했습니다.
✅ 찰리 멍거의 명언
멍거는 날카로운 유머와 통찰력 있는 명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1. “평생 배우는 기계가 되어라”
“나는 가장 똑똑하지도, 가장 부지런하지도 않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봅니다. 그들은 ‘학습 기계’입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일어났을 때보다 조금 더 현명해져 있습니다.”
2. “기회는 드물다 – 나타나면 크게 베팅하라”
“현명한 사람들은 세상이 기회를 줄 때 크게 배팅합니다. 확률이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크게 움직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만히 있습니다. 원리는 그렇게 간단합니다.”
✅ 2023년 11월 28일 – 전설의 마지막
2023년 11월 28일, 찰리 멍거는 99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타계 소식에 버핏은 짧지만 강렬한 성명을 남겼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찰리의 영감과 지혜, 그리고 참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지위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며
전설적인 투자자들의 삶을 돌아보는 이유는 그들의 철학이 오늘날의 시장 상황에서도 초과 수익을 만드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세에 이혼과 파산, 자녀의 죽음이라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도 이를 극복하여 99세에 26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일궈낸 찰리 멍거.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와 투자 철학은 우리에게 단순한 수익 이상의 용기와 지혜를 줍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또 다른 전설적인 투자자의 원칙과 인생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