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가 인정한 진짜 금융 천재, 드러켄밀러

안녕하세요! WStorybook의 마이클입니다.

오늘은 살아있는 전설,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투자 업계에서 그는 ‘찐 투자 천재’라 불리우는 인물 입니다.

참고로 드러켄밀러는 분산투자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확신이 드는 순간 자산의 100%를 집중하여 투자하는 스타일이죠.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바로 이제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stanley druckenmiller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사무실에서 창가에 앉아있다. 비교적 젋은 시절의 사진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stanley druckenmiller (스탠리 드러켄밀러)


✅ 평범한 소년, 금융의 세계로

1953년 6월 14일,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화학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를 따라 뉴저지와 버지니아를 오가며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아픔도 겪었죠.

그의 학창 시절은 의외로 평범했습니다.

그는 훗날 “나는 천재가 아니다. 고등학교 성적은 상위 10%에도 못 들었고, SAT 점수도 평범해 입학 시 SAT를 요구하지 않는 보우딘 대학에 갔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에서만큼은 그는 압도적인 천재였습니다.

보우딘 대학 시절, 원래 영어 교사를 꿈꾸며 영문학을 전공하던 그는 신문의 금융면을 이해하고 싶다는 호기심에 경제학 수업을 듣게 됩니다.

그 순간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경제학에 매료된 그는 1975년 경제학과 영문학 학위를 받고 졸업합니다.

이후 미시간 대학교 박사 과정에 진학했으나, 학업 대신 실전 금융을 택하며 중퇴합니다. 1977년, 피츠버그 내셔널 뱅크의 석유 애널리스트로 입사하며 그의 전설적인 커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 천재성의 발견과 듀케인 캐피탈의 탄생

수습 사원으로 시작한 지 단 1년 만에 드러켄밀러는 은행의 주식 리서치 그룹 책임자가 됩니다. 남다른 통찰력이 증명된 셈이죠.

그리고 1981년, 28살의 나이에 자신의 투자 회사인 ‘듀케인 캐피탈 매니지먼트(Duquesne Capital Management)’를 설립합니다.

듀케인 캐피탈 매니지먼트 홈페이지
듀케인 캐피탈 매니지먼트

초기에는 자본금 90만 달러로 시작해 운영비가 수익보다 많은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거시경제 분석과 집중투자를 결합한 그만의 독특한 방식은 점차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드레퓌스 펀드의 책임자를 겸임하면서도 듀케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결국 전설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 소로스와의 만남, 그리고 역사를 바꾼 거래

1988년, 조지 소로스는 드러켄밀러를 퀀텀 펀드의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영입합니다. 이 파트너십은 금융 역사상 가장 수익성 높은 협업이 되었습니다.

그가 합류한 후 퀀텀 펀드는 연평균 40%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죠.

특히 1992년 9월 16일, ‘블랙 웬즈데이’는 그의 이름이 역사에 새겨진 날입니다. 그는 영국 파운드화가 과대평가되었음을 확신하고 소로스에게 퀀텀 펀드 자본의 100%를 공매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드러켄밀러와 조지 소로스의 이미지
드러켄밀러와 조지 소로스

그러자 소로스는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건 형편없는 리스크 관리다. 이런 일방적인 기회가 올 때는 100%가 아니라 200%를 걸어야 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파운드화 방어에 실패했고, 퀀텀 펀드는 단 하루 만에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대중에게는 소로스가 ‘영국 중앙은행을 무너뜨린 남자’로 알려졌지만, 이 거래의 실질적인 설계자는 드러켄밀러였습니다.

파운드화 하락에 배팅한 차트
파운드화 하락 배팅


✅ 30년 무패 기록과 명예로운 은퇴

소로스를 떠난 후에도 그는 듀케인 캐피탈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어갔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부분의 헤지펀드가 처참한 손실을 기록할 때도 그는 11%의 수익을 냈습니다.

그의 전체 커리어는 그야말로 경이적입니다. 30년 넘게 연평균 3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면서도 단 한 해도 손실을 본 적이 없습니다. 1981년에 1만 달러를 그에게 맡겼다면 2010년에는 2,600만 달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10년 8월, 57세의 나이에 그는 12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폐쇄하고 은퇴를 선언합니다.

“30년간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승리의 기쁨보다 하락할 때 느끼는 실망감과 감정적 대가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박수칠 때 떠났습니다.


✅ 투자 철학: 집중과 확신


드러켄밀러가 남긴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현재가 아닌 18개월 후의 미래에 투자하라
    : 기업의 현재보다 중요한 것은 18개월 후의 시나리오입니다. 주가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따라갑니다.

  2. 유동성이 시장을 움직인다
    :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실적이 아니라 중앙은행과 유동성입니다. 연준의 움직임에 집중하세요.

  3. 옳고 그름보다 ‘수익의 크기’가 중요하다
    : 내가 맞았느냐 틀렸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맞았을 때 얼마나 많이 벌고 틀렸을 때 손실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입니다.


2016년 기준 스텐리 드러켄밀러의 나이, 재산, 국적 등이 나와있는 표와 그림
2016년 기준 드러켄밀러 나이와 재산


INSIGHT

전설적인 투자자들의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변동성이 큰 지금의 시장에서 초과 수익을 낼 수 있는 힌트를 얻기 위함입니다.

드러켄밀러의 투자 원칙과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따라하면, 결과는 보장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드러켄밀러의 인터뷰 또는 기사가 나오면 집중해서 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투자에 대한 원칙, 그리고 매크로 분석 능력은 항상 큰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죠.

다음 포스팅에서는 드러켄밀러의 현재 포트폴리오와 그가 주목하는 섹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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